나의 본관은 창원黃씨이며 6.25때 족보가 유실되었다는 아버님의 말씀만 있었고, 그 동안 계파를 모르다가 학렬을 근거로 찾아본 계파는 황석기로 시조로하는 공희공파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周자 돌림이시고, 나의 아버지는 祐자 돌림이시며, 나는 益자 돌림이고, 아들은 寅자 돌림이다.
황씨는 중국 강하 백익의 후예로 전하며, 우리나라 황씨의 연원은 [조선씨족통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 한나라 광무제 건무 4) 후한의 유신 황락이 사신으로 교지국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의 땅인 평해에 표착하여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며 스스로 [황장군]이라 일컬었으며, 아들 3형제중
맏아들 갑고가 기성군에 봉해져서 평해황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을고는 장수군에 봉해졌으므로 장수황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세째 아들인 병고는 창원백에 봉해져서 창원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러한 황씨의 본관은 평해, 장수, 창원, 상주, 회덕, 덕산, 우주, 황주 등으로 하여 184본이 문헌에 전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황씨는 20본 미만이며 그중에서 창원, 평해, 장수, 상주가 대본이다.
그러나 인구가 가장 많고 역사상 훌륭한 인물을 가장 많이 배출한 창원황씨는 계보를 달리하는 시중공파, 공희공파, 호장공파가 있으나 아직 정확한 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황씨는 고려 말엽에서부터 조선 전반기에 주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가문을 빛냈으며,
특히 대제학 2명과 부자 영의정을 배출한 장수황씨와 문과 급제자가 으뜸인 창원황씨가 빼어났고,
다음이 상주, 평해, 제안, 덕산, 회덕, 우주, 황주 순이다.
창원황씨(昌原黃氏)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보를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이른바 <토황(土黃)>이라하여 고려조에서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고, 의 후손 황신(黃信)을 1세조로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와 공희공(恭僖公)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고 <당황(唐黃)>이라 일컬어지는 공희공파(恭僖公派), 그리고 고려조에서 호장을 지낸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파(戶長公派)가 그것이다.
이들 3파간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으며 따라서 족보도 따로따로 편찬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원나라에서 귀화한 것으로 알려진 까닭에 <당황>이라 불리는 공희공파의 시조 황석기가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종래에는 그가 원나라 사람으로서 고려 공민왕때 노국공주를 배행하고 고려에 온 것으로 전해져 왔었으나 이미 그보다 20년 전에 고려에서 여러 벼슬을 지내고 조적의 난을 토평하는 등 크게 활약한 사실이 <고려사(高麗史)>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어 원래 원나라 사람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 : 한국창원황씨중앙종친회
http://www.hwangkorea.com/i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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