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6.03.0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6. 3. 9. 21:3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하교 이지만) 3학년때 이 책을 그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게 읽었던 톨스토이이의 단편작 입니다.

과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에 대한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내용입니다.


줄거리에 대한 대략의 맥락은 기억하고 있지만 기억이 하도 오래되어 책속의 주인공이라든가 다소 틀릴 수 가 있고,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 책을 통해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인간의 영혼을 거두어가는 어느 한 천사가 하느님으로부터 어느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그 여인의 영혼을 데리러 가보니 남편은 산에서 나무하다 나무에 깔려죽고 여인은 쌍둥이 여자 아이를 출산한 상태였습니다.

여인이 천사에게 자기의 사정을 애원을 합니다. 천사는 하도 사정이 딱하여 혼자 돌아가 하느님께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시천사에게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천사는 다시 여인에게 가서 어쩔 수 없지만 같이 가야겠다고 합니다. 여인이 천사에게 다시 애원합니다. 제발 저 불쌍한 아이들이 젖이라도 뗄 때까지 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천사는 차마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가지 못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시고 그 천사를 지상으로 추방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를 알게 되는 날 너는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천사는 알몸으로 교회 담벼락 근처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영혼은 다른 천사가 가서 데려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또 안가겠다며 몸부림치다 그만 한 아이의 다리위로 뒹굴며 죽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남은 어느 한 초라한 늙은 구두장이의 집에서는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가서 미린 구두 값을 받아오라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할아버지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빌린 구두 값을 받으러 장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 밖에 외상값을 받지 못하였고, 또 집에 가면 할머니에게 바가지를 긁힐 생각을 하니 속도 상하고해서 얼마 받지 못한 외상 값 으로 술을 마셔버렸습니다. 해도 져서 아주 춥고, 컴컴한 밤길 할아버지는 술기운에 걸어가다가 교회 담벼락에 젊은이가 알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가다가 그래도 왠지 마음이 찜찜해 다시 가서는 자신의 털신도 벗어 신기고는 자신은 양발발로 젊은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왔습니다.

할머니는 오늘 저녁에 먹을 빵밖에 없는데다 외상값도 받아오지 못하고 더군다나 술도 취한상태에서 거지까지 데리고 들어오는 영감님을 보니 울화가 치밀어 독설을 쏟아 붇습니다.

하지만 때가 저녁을 훨씬 지난 때라 남은 빵으로 할아버지와의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두 분이 저녁을 드시다 할머니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젊은이를 보자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신의 빵을 젊은이에게 내어주며 저녁을 먹였습니다. 이때 젊은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천사는 첫 번째의 답을 알았던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자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셨듯이, 인간의 심성 또한 하느님은 사랑이신 것처럼 인간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었던 겁니다.


오갈데 없는 젊은이는 구두장이 할아버지의 권유로 구두장이가 되었고 유명해졌습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마주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삼두마차 한 대가 방울소리도 요란하게 집 앞에 멈췄고, 아주 거만하게 생긴 부가가 하인을 시켜 들고 온 아주고급 가죽을 내놓으며 ‘1년을 신어도 모양이 망가지지 않고 꿰맨 자리가 뜯어지지도 않는 장화를 원해!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으면 맡아서 재단을 하라구. 아니라면 아예 손대지 않는게 좋아. 미리 말해 두지만, 만약 장화가 1년 안에 망가지거나 찢어지기라도 하면 네놈을 감옥에 처넣어 버릴 테니까. 대신 1년이 지난 뒤에도 멀쩡하면 그때 가서 품삯으로 10루블을 주지.’ 하고 가버렸습니다. 이때 젊은이는 처음과 같은 미소를 지었고, 할아버지는 젊은이에게 구두 짓는 일을 맡기고는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젊은이는 구두가 아니라 망자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만들어놨습니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집에서 일한 지 1년이 넘도록 미하일이 실수하는 걸 본적이 없는데 하필이면 지금 같은 때 이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다니. 손님은 굽 있는 장화를 주문했는데 밋밋한 슬리퍼 따위를 만들었으니 가죽을 통 못 쓰게 돼 버렸잖아. 손님한테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이런 가죽을 쉽게 구할 수도 없을텐데.’하고 망연자실하며 젊은이를 나무라기 시작한 순간, 현관 문고리가 덜거덕거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누가 말을 타고 와서 이제 막 고삐를 비끄러매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 보니 그는 좀 전에 왔던 신사의 하인이었다. 하인의 말인 즉 집에 돌아가던 길에 마차에서 주인이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주인의 안주인이 “'구둣방에 가서 말하거라. 아까 나리께서 주문하신 장화는 필요 없게 되었으니 대신 그 가죽으로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지어달라고 말이야. 그리고 완성되길 기다려서 슬리퍼를 가지고 오너라.'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젊은이의 두 번째 웃음은 쌍둥이 여자아기 엄마의 목숨을 취한 친구 천사가 그 부자 뒤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나이는 1년을 신어도 망가지지 않을 신발을 원하지만 자신이 오늘 중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은 모르는구나.'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바로 자기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지혜였습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아서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복음성가 중에 “오늘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가 생각납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깨끗하게 차려입은 부인이 가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부인은 털외투를 입고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두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다만 한 아이가 다리를 약간 절고 있었다.


가게에 들어와서는 "아이들에게 봄에 신을 구두를 맞춰 주려고요."하고 말하였다. 이때 젊은이는 다시금 첫 번째와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구두를 만들고 있었다.

구두를 만드는 동안 부인은 아이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랍니다. 이 두 아이는 태어난 지 1주일도 못 되어 고아가 되어 버렸지

요. 아버지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사흘 전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낳고 곧 숨을 거뒀답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이웃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이 아이들의 부모와는 한 식구처럼 지내는 사이였지요.


아이들 아버지는 숲에 들어가 혼자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큰 나무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덮치는 바람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어요. 가까스로 집에까지 옮겨다 놓았지만 곧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지요. 그리고 며칠 안 있어 그의 아내가 쌍둥이를 낳은 거예요. 바로 이 아이들이죠. 집이 몹시 가난한 데다 돌봐줄 친척 하나 없어, 애들 엄마는 혼자 아기를 낳고 혼자 죽어갔답니다. 해산 다음날 아침에 제가 문안을 갔더니, 가엾게도 애들 엄마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숨을 거두는 순간 바로 이 아이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이 아이는 다리 한쪽을 못쓰게 되고 말았죠.


마을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관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습니다. 다들 친절한 사람들이거든요. 하지만 뒤에 남은 갓난아기들 일이 걱정이었지요. 모인 여자들 중에 젖먹이가 딸린 이는 저뿐이었습니다. 제겐 태어난 지 8주밖에 안된 첫아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잠시 두 아이를 맡기로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의논을 했죠. 하지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어요?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마리아, 아이들을 좀더 데리고 있어 줘요. 우리가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볼 테니까 그때까지만.'


저는 다리가 온전한 아이에게만 젖을 물렸습니다. 또 한 아이에겐 아예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죠. 어차피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론 모두에게 똑같이 젖을 먹였습니다. 제 아이와 이 아이들 둘 해서 한꺼번에 세 아이를 키우게 된 거죠. 그때야 젊고 기운도 펄펄하고 먹성도 좋았으니까 그럴 수 있었을 거예요.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동안 한 아이는 차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 아이가 젖꼭지를 놓아야 다음 아이가 먹을 수 있었죠.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이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낳은 아이는 두 살 되던 해에 그분께서 데려가고 말았지요.


그 후 살림살이는 점점 나아졌습니다. 지금은 이 거리 상인들 소유의 물방앗간 일을 맡아보고 있는데 수입이 좋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걱정이 없답니다. 다만 아이가 없을 뿐이죠.


정말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혼자 쓸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제가 이 아이들를 귀여워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이 아이들은 제게 촛불과도 같은 존재인 걸요."


부인은 한 손으로 다리를 저는 아이를 당겨 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빰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할아버지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모도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더니 과연 그 말이 옳은 것 같군요."


이런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젊은이가 앉아 있는 구석에서 섬광이 비치더니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고 젊은이는 천사의 모습으로 승천하였다.


하느님의 계획이 아주 위대하심을 느꼈습니다. 만일 이 아이들이 자기 엄마의 손에서 그대로 자랐다면 가나을 면치 못했을 텐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환난 중에 있을 때 때로는 원망도하고, 간절히 소망하지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길이 아닌가합니다. 또 우리가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그 어려움을 잘 견디어내며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심성 또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맘속에 사랑을 주셨기에 모든 일에 사랑하는 맘과 내일의 일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맘으로 오늘 하루를 사랑의 맘으로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으며 이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하느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Posted by Paul Hwang